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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복음주의) 선교신학에 대한 정리

참고 서적.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레슬리 뉴비긴 10-13장, 18장
선교신학, 크레이그 오트, 스티븐 스트로스, 티모시 텐넌트 1장-4장, 13장 p. 1-163, 490-526
변화하는 선교, 데이비드 J 보쉬, 10장-12장 중간 p. 521-576
지난 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선교의 이해는 크게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으로 압축될 수 있다.

선교에 대한 이해는 대학시절에 어느정도 그 지식이 쌓인 상황에서, 선교단체에서의 활동으로 심화되었다. 거기에는 부르소 올슨과 돈 리차드슨의 영향이 컸다. Peace Child는 당시의 내 신앙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계기로 상황화를 이해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리고 한 친구의 도움으로 그당시에 유행했던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접하게 되었고, 몇몇 강해 설교집 또는 강의들 (아더핑크의 히브리서,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산상수훈, 헤르만 리델보스의 하나님 나라, 김세윤 교수의 하나님 나라 등)을 듣고 보았던 것이 거시적인 시선으로 선교를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동시에 개혁주의 배경과의 갈등 속에서도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의무를 레슬리뉴비긴과 자크엘룰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들은 어디까지나 선교단체의 나이브한 신학적 기반 위에서 비롯되었다. 내 신학함의 세계를 확장시켜준 계기는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텐리 그랜츠의 “20세기 신학”을 만나면서였다. 당대의 신학자 철학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면서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 환경, 철학과 사회과학 등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이 신학임을 깨닫게 해주었고, 이러한 이해는 곧 내가 선교를 바라보는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선교의 이야기들 역시 당시 파송국의 배경들을 이해해야만 그들의 선교 이야기를 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선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작은 GCOWE 95와 AD2000 운동의 비현실적 구호와 프로젝트였고, 그 이후 개인적으로 비성경적 개념이라 생각하는 종족입양과 10/40윈도우를 만나면서 였다. 이것을 계기로 목표지향적 선교 신학을 불편하게 보게 되었다.

이런 모든 과정들은 하나의 주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으로 모아졌다. 대학생 시절부터 내 존재목적으로 이해했던 “예배자”의 부르심 속에서 선교를 이해했고, 그것은 타문화 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하는 이를 찾으신다는 개념이 되었다. 하나님의 임재, 예배의 개념은 하나님 나라안에서 벌어지는 본질이라 여겼고, “노동이 곧 기도, 삶이 곧 예배”라는 정의가 사회를 읽어가는 신학 기반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교는 예배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행위로 이해했다.

선교신학은 선교학이라는 것과 혼돈을 주는 용어였다. 강의는 그런 면에서 내가 어떤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를 정리해주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기쁜 시간이었다. 선교신학은 그런 전체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지도 역할을 해주었다. 앞에서 서술했던 내 인식 속의 선교신학을 문장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까? 선교의 성경적 기초에 있어서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설명한 것은 탁월하다. 결국 이 두가지의 힘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생각하는 신학적 틀임과 동시에 나의 사역을 점검하는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전히 내가 "복음주의"라는 범주를 어떻게 정의하며 겨냄화 해야할지에 있어서 답을 얻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다. 깊게 생각할 여력이 없어서 던진 질문이긴 하지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개혁주의, 복음주의-개혁주의(보수적) 라는 개념이 한국 기독교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현대 사회에서 복음주의가 도움이 될지 거추장 스러울 것인지에 있어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마도 보쉬나 뉴비긴이 설명한대로 "패러다임의 전환기"라는 시간상의 위치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삐르게 포스트모던화 되면서도 기반과 사고는 근대주의적인 철학과 사고가 충돌하는 복잡미묘한 현장이기 때문이라 진단하였다.

그러므로 이 영역은 내 신학함을 통해 앞에서 점검했던 하나님의 임재와 위임이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성령님의 운행, 그리고 원심력과 구심력의 조화를 생각하며 길을 따라가고 만들어가야겠다. 어쩌면 복음주의라는 전제를 수정해야 할 순간이 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지만 이 세계(한국 기독교 선교 사회)에서 복음주의라는 나이브한 울타리를 잘 활용하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신학자도 아니면서 실용노선을 구지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것으로 생각할 때, 예배자로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곳에 임재하는 일상의 삶이 우선이 되는 사역이어야 한다. 그동안을 돌이켜볼 때, 프로젝트의 사역을 완수하는 것보다 제일 어려운 것은 바로 일상을 예배로 여기는 태도일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연습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또 하나는 한국 MK 사역의 현재 모습은 선교신학으로 비춰볼 때 비정상적인 선교의 결과로 생각한다. 선교는 결국 선교사 가정의 영육간의 건강함에 있는데 이런 인식 부족은 MK 사역이 여전히 선교사/선교단체의 인식을 깨우는 부분에 있어서도 참여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최근 한국 사회에 머무는 타문화권 아이들의 필요에 반응하는 사역이 MK사역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극복을 넘어서 본국의 기독교 상황을 증진시킬 수 있는 요소를 그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 MK에게만 집중된 시선을 전세계 TCK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21세기 후반에 적절한 선교신학을 찾아가는 과정을 나의 선교사역 일부로 포함시키는 일이다. 내가 가진 신학의 울타리를 확인하고, 나를 재정의하고, 그것들이 21세기를 살명서 직면한 문제들과 충돌하고, 풀어가면서 그에 적절한 선교신학을 삶 속에 내재화시키고 나를 변신시키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일(신학함)이 동반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