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그러나 유명한)들을 하나 둘 내 인식에 들어오면서 엄청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 압력이 정당한 것은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적절하게 가지지 못했고, 그 원인이 내 무식함 뿐만 아니라 나의 게으름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정당하다고 말하는 압력, 압박, 부담이 단지 내 '무능'이라는 측면에서만 다룬다면 그건 정당할 수 없다. 왜 내가 그런 압박을 받아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족함이야말로 나의 게으름과 무지를 변명하고, 오히려 부적절한 처사라고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저항의 자리에 설라치면 내 안에 들려오는 하나의 소리가 이를 제지한다.
"소명"
내가 어떤 일에 이미 적임자라고 지명된 그 것이 나를 압박하고,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을 모두 감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이 세상의 겁나 다양한 압력들 속에서 특정한 압력들에 대해서만 나의 책임이 있다는 다행스러운 판단이 가능하다.
직업의식, 윤리 뭐라 부르건 간에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그 길을 걷는 것을 나에게 납득시키고, 스스로에게 들이미는 비판들을 분석하고 성찰해서 구분하고 수용하거나 손을 터는 일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되는 듯 싶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압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내 그릇에 대한 나의 인식이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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