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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2016년 가을의 여정, In Flight LJ11


To HK
마치 수능추위처럼 갑작스레 날씨가 쌀쌀해진 비오는 가을끝, 겨울의 시작
이번 여행이 나에게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가정주부로 스스로 두 발을 집이라는 공간에 묶어두었던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는 모험을 아무 생각없이 저지른 행위는 거의 재앙과도 같이 다른 가족들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가정주부란 그 자리는 다른 활동을 포기한채 오롯이 집안일에만 집중하고 다른 일과 관계를 하나 둘 끊어버리는 곳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가장 큰 어려움은 아이들을 돌보는 이로써의 존재다. 이것은 다른 이에게 부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의 변덕스런 순간 순간의 기분에 반응하며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며 하루를 열어내는 일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일임에도, 나름 각오를 한 일임에도 그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현장에 대한 나의 대응력은 부실한 상상력과 로드걸린 버벅이는 반응으로 불같은 분노와 감정의 전쟁터로 돌변하게 만든다. 그리고 곧 내 어그러진 심성들로 아이들 가슴을 생채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일과를 한정된 시간에 처리하도록 하는 자리에 누구를 부를 수 있을까? 또 그런 아이들이기에 아무나 또는 단지 가깝다는 이유로 지인들에게 부탁하는 것 또한 내 마음이 편치 않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지금도 내내 아이들의 모습을 걱정하고 있다. (미안하다 아내여.)
 
가정주부를 선택하며 또 하나의 어려움은 그동안 관계를 통해 일하던 것들이 내 인생에 있어 우선이 되었다면, 이젠 그 일들이 내 가정주부로의 삶에 제한받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잘한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마음은 어디 집에 스스로를 박아두고 싶을까? 어지간히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만남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나름 천직이라 생각했는데, 이를 스스로 제한하고 가정에 정주하길 결정한 것은 내 성질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물론 가정을 돌보는 일, 음식을 만들고, 세탁과 다리미질, 청소와 정리를 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역마살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성질을 죽여가는 지금의 상황을 선택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가족의 걸어가는 길 속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있어야 할 시기에 있기로 결정한 것은 우리 부모의 선택이었고, 우리의 가치관이다. 그래서 아내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기에 나는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뿐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사실 내 체질을 바꾸는 고된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그 강도가 컸고, 통제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계획과 의지가 강하면 강할 수록 집안일은 엉망이 되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할 땐 더욱 그렇다. 공부를 하는 그 자체도 버겁지만 나에게 필요한 절대적 시간들을 확보하려 할 수록 아이들과 충돌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를 움추리게 된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랄까?

집에서 있을 여러가지 일들로부터 떠난 공간, 내 주변의 일들이 나의 신경을 주의케 하는 그 공간에 있다는 것이 낯설지만 너무나 반가운 존재다. 게다가 홍콩이 아니던가?

이리저리 다닐때 내 의지로 떠난 여정의 첫번째 국외의 공간... 그렇게 만난 2000년 1월의 홍콩으로부터 2016년 11월의 홍콩은 기억의 하나하나에 덧입혀대어 어느 시간인지 더이상 모르는 초월의 존재로 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젠 또 하나의 시간들이 덧입혀질 것이다. 헤리티지의 커피숍에서 또 숨을 들이키며 져가는 태양을 보는 아쉬움처럼 내 주어진 이곳에서의 시간이 짧아지는 것에 안타까움에 가슴을 동동거릴 모습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