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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일기

어린이집 등원시키기. 다시 한번.

어린이집에 가길 싫어하는 아이를 끌고 가서, 등원시킨 후유증은 꽤 크다. (누구에게?)

오늘 아침 아이 둘을 데리고 등교를 시작할 찰나, 둘째는 엄마랑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결국 울음보를 터트렸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침의 날씨가 찬바람이 살살부는 때라, 아이와 길게 밖에서 씨름하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첫째가 아침 일찍 나온 보람없이 유치원에 늦게 될 상황이기도 했다. 둘째를 끌어안고 모질게 내려왔지만, 아이의 몸부림에 결국 중간에서 멈춰야만 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협박도 했지만, 쉬운 길은  엄마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엄마가 출근하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쉽게 엄마를 불러선 안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엔 ‘이번에 지면, 앞으로 더 어려워질꺼야.’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다만 동네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현재의 상황은 타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급한대로 언니 유치원까지 같이 가는 것을 제안했다.

그제서아 둘째는 울음을 멈추고, 눈물을 닦고, 언니의 유치원으로 함께 걸어갔다. 기분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다. 희망이 보였다. 그동안 첫째는 가만히 옆에서 있어주었다.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유치원에 도착하고, 첫째는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둘째와 장난도 칠 무렵,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빠랑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쓴다. 몇몇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유치원에 오고가는 그 자리에서 다시 아이를 달래보았다. 아이가 집에 가서 무엇을 하고 놀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내심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낼 무렵, 마침 도로에서 지인의 차가 멈춰서고, 우리는 서둘러 그 차에 올라탔다. 둘째는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엉한 듯 한동안 울음을 멈췄다. 그러나 차가 어린이 집이 있는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깨닫고 멈췄던 울음을 터트렸다. 현관앞에서 아이를 선생님께 안겨드리면서도 아이의 울음은 어느새 통곡이 되었고,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매정한 이가 되어버렸다. 

머리 속엔 ‘아이를 안보내야 하는거 아냐?’하는 생각이 쉴새없이 나의 마음을 찔렀다. 한동안 어린이집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의 울음 소리가 잦아들길 바램으로, 또 하나는 혹 아이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오분을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비로소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제 삼자로 있었을 때, 그리도 쉬워보였던 일들이 일상 속에서는 예고없이 처칠게 다가오는 어려움의 연속이다.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머리 속에서 그려보면서도, 아이를 품에서 떼어내는 못난 아빠라는 자책감은 쉬없이 몰아친다. 그렇게 부모의 품에서 아이를 떼어내는 비생리적인 일을 하고 있다. 사회적인 건강함과 자녀와의 친밀함이라는 사이에서 어쩌면 그 둘 다 아이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나를 위한 것은 아닌지 되물으면서, 그 어떤 것 하나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의문 투성이의 인생에 하나의 흔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슬픈 감정이 오늘 하루를 덮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