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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일기

20181205를 기억한다. 문화오감연구소 하노이를 기약하며.

신짜오! 문화오감연구소 하노이 지부장이 될뻔한 방준범입니다. 
몇몇 페친분들의 관심이 있었지만 속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하노이 지부 개척을 꿈꿨더랬습니다.
2015년에 하노이를 방문하면서, 혹 여기에 올지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 교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내를 어떻게 하든 여기에 지원하게 만들면…’ 으로 시작된 망상은 2019년에 실현되는 줄 알았습니다. 2015년부터 “교사비젼”이 어떻고, “선교훈련은 그냥 받은게 아니다.”라면서 아내에게 떡밥을 던졌는데, 2019년 모집에 “화학교사 모집”이 떴다고 알렸더니 덜커덩 지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류 면접에서 통과되면서, 우리 모두는 ‘이제 가는거다!’라고 믿었습니다. 아내 학교 교장쌤, 교감쌤 모두 적극 지원해 주셨고, 합격을 의미하는 듯한 뉘앙스를 듣기도 해서 정말 가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하노이에 가면 이것 저것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즉시 수첩에 적어 어떻게 할지 꿈을 꾸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문화오감연구소 하노이 지부 개척!의 전말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떨어졌습니다. “여보,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라 격려의 말을 했지만, 솔직히 저도 멘붕이었습니다. 이미 마음은 하노이에 가 있었기 때문에, 저의 멘탈을 다시 서울로 불러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2. 왜 허망(?)한 꿈을 꿨는가?
사연이 있습니다. 선교사자녀 사역을 하면서 눈에 밟힌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선교현장에서 만난 한국국적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선교사자녀가 아니기에 다양한(?) 선교사자녀 지원 프로그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현장의 다양성을 체험하는 대신 부모나 아이들 모두 교육=대학입학의 공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문화오감센터가 이들의 외국 경험이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영어에 몰입하는 대신 말이죠.) 이런 일들이 좀 일반화되면 선교사자녀들도 당연히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거구요. 그렇지 않아도 선교사들의 재정압박과 비자문제로 심각한 상황에서 말이죠. 
그래서 해외에서의 활동을 나름 보장해줄 신분을 위해 선교단체 소속을 고려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아무것도 결정난 것은 없지만, 만약 아내가 고용되면 두 달동안 이주에 따른 제반사항들을 모두 처리하면서 동시에 현지 거주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조심스럽게 교회와 선교단체에 파송절차를 전제를 배경으로 논의하였습니다. 아내의 하노이 국제학교 고용을 전제로 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주 과정과 파송 절차를 발표 이전부터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떨어지면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교회와 단체 모두 이해해 주셔서 조용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모든 계획을 백지화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아직도 하노이에 간 멘탈은 귀국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3. 그래도 좋은 교사들이 필요하다.
한국 국제학교의 교육환경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내가 직접 도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교사들이 맡게될 업무량이 한국보다 엄청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한국 국제학교는 영어권 국제학교 다음으로 평가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물리적인 환경은 나라와 도시마다 다르겠지만 여러가지 제약들이 있습니다. 지원하는 선생님들의 질과 지원 동기에 대한 문제도 자주 거론됩니다. 게다가 상당수의 학교들이 그 목표를 대학입학에 두고 있습니다. 특례입학제도로 인해 한국보다 공부의 압박이 크지는 않지만 가장 큰 비중을 대학에 둡니다. 그래서인지 학교가 위치한 국가, 도시의 특색들이 졸업생들에게서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교육과정을 세우고, 교사의 역할을 설정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좋은 교사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잘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합니다. 학생과의 소통, 중재, 학생의 잠재력 개발 등등의 다양한 역할들이 교사에게 부여되는 건 아마도 그만큼 아이들의 시간에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에는 이런 교사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 분들이 해외에도 우리 아이들의 존재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 아내가 탁월한 교사는 아니지만 (콩깍지가 씌워져 있는 저로썬) 그래도 괜찮은 헌신된 좋은 교사에 가깝게 보였기에, 하나의 길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이번 사태(?)의 배경입니다. 어쨌든 아내를 통해 영화를 누려보려던 저의 계획은 수포가 되었고, 다시 한국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페북에서 나름 이상한(?) 글로 여러분들(중 일부)를 현혹시켜 물의를 일으킨 것에 사과드리며, 그만큼 관심을 가져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나 문화오감센터의 여정을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일로 교단 파송 선교사가 될 뻔했는데, 나름 달콤했습니다. (응???) 아쉽지만 FMB 가족은 못되었고, 그냥 현재의 FMB 자문위원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별 것 아닌 저의 낚시글에 동조해주신 페친 여러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