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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일기

2020년 8월 25일 아이들의 등교

이번주 아이들의 등교/등원이 시작되었다. 감사하게도 3단계는 아니어서 두 아이 모두 이틀 이상 학교에 간다. 그 덕분에 나는 오늘 아침에 2주 정도 먹을 분량을 코스트코에서 사가지고 왔다. 그동안 커피숍에서 낮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집콕하기로 했다. 에어컨 없는 집에서 창문 모두 열고, 웃퉁 벗어 재끼고, 선풍기를 돌리니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에어컨 없이 산지 8년이 되어가니 이젠 익숙하기도 하고. 문제는 갇힌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정서에 어떨지는 좀 걱정스럽긴 하다. 애들이 없는 요 이틀을 자알 넘기면 나머지 4-5일동안 부대낄 수 있으리라.

얼마전 모 사이트에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성토(?)를 본 적이 있다. 밖에서 열심히 일 하는데 집에서,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점심 사먹고, 저녁에 남편들어오면 바가지 긁는다고...

이런 방식의 생각은 개인의 인지적 측면이 개인의 경험에 더하여 집단내 자리하는 선험적 지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류의 글들이 최근 더 심화된 측면에는 아마도 페미니즘 운동과 연관된듯 싶고, 몇몇 이슈에 따른 확증편향과도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현재의 분위기는 관계성 의 증진보다는 편가르기와 함께 공격적 또는 방어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이를 개인의 심리적 측면에서 진단이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진단이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다만 이런 현상들이 심화되면서 사회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그에 따른 피해자들이 대량으로 나타나는 상황들이 온다면, 과연 사회가 지탱될 수 있을지 싶다.

코로나19는 여러모로 우리의 내부가 드러나는 일종의 리트머스와도 같다. 그동안 감추고 위장할 수 있었던 본질들이 종교는 종교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각 집단들은 그 나름대로, 또 개인은 개인대로 폭로되고, 그 증상의 깊이들도 드러나고 있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또 나름의 부르심이라 믿었던 것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나 역시 내부에 가득한 폭력적 상상들은 내 긴장이 극도로 치닫는 그 지점들에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시에 심약함은 한없이 움추려들고 있다.

날마다 나를 시험하는 자리에 내어놓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밤마다 눈을 감으며, 오늘의 생존과 생환에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위로받는 밤을 맞을 수 있는 것이 기독교적 맥락에서 소위 '은혜'요, '기적'이 아닌지 싶다.

지금부터 3시간 뒤에 두 딸이 집에 올 것이다. 나는 두 아이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날의 일과를 마칠 때까지 돌아온 아이들에게 어떤 태도로 대할수 있을까? (비록 집 안에서 격리되어 있지만) 나와 무관하지 않을 사회에서 밀려오는 거친 파도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육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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