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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일기

부모인 것이다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생긴다.

세탁기는 통돌이에서 드럼으로 바뀌고, 가루세제는 액체세제로, 이제는 종이처럼 얇고 가볍게 나오는 시대인데,

여전히 욕시 한 귀탱이에 주저 앉아 바닥 시커먼 아이들 양말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다. 

서울 집은 세탁실과 욕실이 따로 있어, 애들 양말의 상태를 샬펴볼 겨를 없이 드럼 세탁기에 던져 넣기 바빴는데, 시골에 내려오니 욕실에 위치한 구형 세탁기에 넣으면서 아이들 양말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세제의 힘이 아무리 좋아도 이건 안빠지겠지' 싶어 애들 양말을 다시 수거해 욕실 귀탱이에 주저 앉아 세탁비누를 집어들었다. 아이들 양말의 거무튀튀한 바닥을 열심히 문지르다보니, 내가 언제 내 양말을 이리 부여잡고 문지른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문득 이 상황을 복기해 봤다. 아이들 양말을 보고, 수거하여, 문지르는 행위가 자연스러웠다. 

'아마 아내의 양말을 봐도 이러지는 않았을꺼야.' 라고 생각하니, 내가 참 낯설다. 

"쯧"

혀 한번 차고, 다시 때꾸정물이 나오는 양말들을 더 부여잡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부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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