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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용감한 꼬마 재봉사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

 

용감한 꼬마 재봉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한 방에 일곱"을 허리에 쓰고 여행을 다녔고, 거인들과 일각수, 멧돼지를 잡아 공주와 결혼했다. 그리고 잠꼬대에서 그가 별볼일 없는 재봉사였음을 안 공주가 왕에게 꼰지르자 다음날 죽이기 위해 군사를 배치했다. 이를 알게된 재봉사는 잠꼬대로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여 군대를 도망가게 했고, 왕이 되었다.

그림형제의 동화는 잔인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의외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교훈은 무엇일까? 자기 과시욕과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꼬마 재봉사? 아니면... 누굴 비꼬기? 어쨌든 한 방에 일곱의 결정타를 날리는 존재임은 변함없다. 분명히 주인공은 꼬마 재봉사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건 그의 일련의 과정들이 갖고 있는 돌발성과 밑도 끝도 없는 재봉사의 자신감이다. 그의 낙관적 모습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라면 돈키호테는 세상의 진실을 알고 절망하여 죽었지만, 재봉사는 반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의 중심으로 올려 놓았다. 그동안 우리는 인과적 측면에서 기능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이었지만, 우리의 삶은 인과적이면서도 예측불가능한 즉흥적인 현상을 매 순간마다 대면해야만 한다. 마치 게임에서 주어진 과제를 마치면 다음 레벨로 올라가고, 또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치나 소지한 것, 예측 가능한 무언가의 미래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누군가에게는 마치 운처럼 찾아오고, 누군가에게는 저주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꼬마재봉사는 미래를 그리고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단지 직면한 문제들을 대면하고, 풀어냈을 뿐이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자였다. 많은 교육을 받거나 혈통이 좋거나, 무예가 깊은 것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돈키호테도 비슷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그를 보다 나은 자리, 그가 기대한 자리로 인도하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zE1a4Mx-mtc 

이 동화는 이야기를 각색해서 마지막 공주 서사를 빼버렸다. 왜? 애들에게 무얼 말해주려고?

꼬마 재봉사 이야기에는 다른 조연들이 있다. 그 중 인상깊은 이들은 바로 왕과 공주였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충실했다. 왕은 자신의 왕국에 닥칭 위협을 제하고자 했으며, 공주는 그 일에 대한 일종의 부상품으로 재봉사와 결혼을 감수했다. 또 왕족의 혈통에 재봉사같은 서민의 피가 자신들을 속이며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꼬마 재봉사의 능력 앞에서 무너졌다. 왕은 왕위를 재봉사에게 물려주었고, 공주는 그의 신분을 보장하는 아내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여느 동화처럼 "행복하게" 끝났다. 가만히 생각하면 재봉사의 성실함(?)은 왕이 되는 밑걸음이 되었지만, 모든 이들이 적용가능한 교훈이 되기엔 비약이 크다. 그런데 왕과 공주의 모습을 보면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면 재봉사같은 존재에게 자신의 미래를 빼앗긴다는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실함은 꼬마 재봉사와 왕과 공주의 운명을 대비시킨다. 재봉사의 성실함은 왕이 되는 성공을 부여하지만, 왕과 공주의 성실함은 자신들의 미래를 종속당하는 모습이다. 이건 모순이다. 어쩌면 성실함이 이 동화의 교훈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뭘까? 주어진 환경에 대한 종속과 극복으로 본다면? 

이 그림에는 그나마 마지막 에피소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공주는 없네.

18세기 독일은 백년전쟁으로 인한 피폐함에 찌들어 있던 시기였다. 앞서 유럽의 계속되는 가문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생명들이 대지 속에 빨려들어가던 시기들이 지속되었고, 결국 독일 땅이 유럽 전쟁의 한복판이 되는 시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시기에 꼬마 재봉사의 이야기는 어떤 맥락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왔을까? 그림형제는 이 동화를 수집하는 것 너머 의도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다양한 서사들이 다가온다. 다만 피폐해진 대중들 속에서 재봉사 설화를 구전으로 가졌을 그들에게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자, 재봉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또 동시에 자신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성실함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절망적인 현실을 도피하는 대중의 심리, 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심리를 반영한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