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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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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에 대한 생각 문화일보에 소개된 재미사업가 김창원(앰코 회장)씨의 기부에 대한 생각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기부라는 것이 생각으로는 내 가진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그것조차 잘 되지 않아서 짜투리돈을 모아 하게 되는데, 이분은 목적을 두고 하고 계셨다. 이분에게 있어서 기부란 "쓰다 남은 돈으로 남을 돕는 것은 결코 기부가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희생할 정도로 아프게 해야 진정한 기부입니다. 기부할 때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내에서 최대한 기부하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사회에도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하셨다. "아픈만큼" "능력내에서 최대한 기부" 라는 두가지 기준이 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리고 ..
저널... 곧 끝난다. 오늘... 마무리 중... 발등의 불이 활활 타오르네.... 아~~~
글쓰기를 잘 하고 싶다. 어려운 말이 아니라 누구든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기교는 없지만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난 나름의 기교를 쓴다고 해보는데, 실제로 보면 문장도 엉망이고 단어 선택도 잘 못한다. 흠...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거... 한마디로 잘나고 싶은거겠지.
흩어짐과 모임의 반복- 가족의 의미 자손에 대한 집착은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이"이다. 그 여정은 성장이라는 기간에 함께 있다가 또 다른 가족을 이루며 떠나고 또 만나고 떠남의 연속이다. 그것이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그 만남에서 지닌 희노애락, 때로는 격려로 또 때로는 무너짐을 안고 있는 핏줄. 핏줄을 부인해 보고 지워보려고 하지만 또 그 핏줄에 끌려 그 먼 타국에서 자신의 키워준 부모를 떠나 오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머릿 속 먼지 자욱한 테이블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흑백사진처럼 희미한듯 하면서도 선명한 그 가족의 기억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재했던 이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나를 만드시고 세상에..
창의력 고갈... 원래 그런게 있었나? 건축... 내 전공이라 자랑스레 말하지만... 난 3류... 건축을 해보지도 않고서 난... 내 학부 전공에 대해 자랑스레 떠벌리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난 3류... 건물과 도시를 삐뚤어 보며 중얼거리긴 하지만, 난 그정도다. 그걸 짓기 위해 나름 머리 굴렸을 현실적인 설계가나 한푼의 건축비를 빼보려 애쓰는 시공자의 노력을 무참히 밟아버린다. 난 3류... 건축아닌 일을 하면서 4년간 머리쓰며 학점에 매달렸던 거라 그런지 쳐다보지 않으려 하지만... 어떤 글에서든 어떤 사진에서든 예술가들의 애쓴 흔적이나 발부둥치는 실존의 흔적들을 대면하거나 그들의 창작 세계를 보게 되면 내 영혼은 불탄다. 그들의 창의적인 생각이나 내 머리 속에선 쥐어짜도 나오지 않을 관점들을 접하면 내 마음은 설레인다. 가끔 ..
동해로 바꿔주세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느낄때는 '동해'라던지, '독도'라던지, '간도','백두산' 등의 지리적인 주인 의식이 발동될 때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어떤 의식이나 절차를 밟아서 생기는 것보다는 내 감정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그 자체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조국애를 일으킬 때 인걸 느끼면 '민족주의'에 대한 나름 경계를 느끼면서도 이것을 떠날 수 없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국제 사회에 살면서 자국의식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것도 있지만 반대로 잃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생각보다 우리네 민족애를 자극하는 것이 감정적이고 일편적인 것이어서 그들에게 설명할 때 국제 사회에서 존중되는 어떤 기준이나 절차에 미달되거나 감정적 호소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런 이슈에 반응..
물두멍에서의 성결의식 vs. 예수님의 성결의식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리고 베드로의 질문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에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3- 예수님의 제자들을 발씻기시는 사건은 두가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겸손'이라면 다른 하나는 '성결'에 대한 의식이다. 이 의식후 예수님은 죽고(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재하셨다. 하나님의 함께 계심이 '가까이'에서 '내재'로 바뀌었다. 바울은 이것을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표현했다. -고전 3:16- 이 사건은 구약의 성막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의식과 유사하다. 특히 출애굽기 30장에 등장하는 물두멍에 대한 설명은 예수님의 행사와 유사함을 ..
봄날의 그녀 하늘을 노려보다. 겨울도 봄도 아니었던 그 어느날, 그녀와 산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