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ge of Life/삶의 언저리 (147) 썸네일형 리스트형 080726 국립박물관을 가다. 토요일, 오랜만에 아내와 야외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부부라는게... 그렇게 좋게 시작되었다가도 돌아올 땐 분위기 싸하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일단의 시작은 벤뎅이 속쫍은 내 이해심... 이촌동의 살인적인 물가를 아주 아주 옛날에 경험한 나로선 먹을 것을 그곳에서 먹을게 없으니 준비해 가잔 것이었고, 아내는 거기 가면 먹을 게 있다는 주의... 음... 덕분에 가게 된 햄버거집은 직접 만든다는 수제... 근데 양도 적지만, 맛도 특이한게 없다. 그냥.. 신선한 야채가 전부... 그렇게 시작된 나의 신경전은 국립박물관에 디스플레이된 것들에 대한 나의 불만으로 이어져 아내의 속을 팍팍 긁었다. (지금 생각해 보지만 참 속좁은 나다. ㅠ.ㅠ ) 일단은 볼거리.. 일상...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친구삼아 자주 다운되는 익스플로러를 달래가며, 그리고 한글쓰기가 자주 먹통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씹으며... 몇일동안... 동일한 자리에 앉아 있다. 그동안 머리쓰며 생각한 브로셔 작업은 아무래도 "다시~" 소리를 들을 것 같은데 수정할 여력도 없고, 머리도 안돌아간다. 음... 그렇게 하루가 간다. 아내 서울에 올라오다. 아내가 올라왔다. 방학식을 마치자 마자 올라온 그녀와 나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티격태격도 해보고, 서점에서 죽치고 책도 보았다. 아내를 이해하는 것은 결혼이 3년이 되어가도 어려운 일이다. 그녀에게도 나를 이해하는 것이 그렇겠지... 같이 산다는 것이 언제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연약함에 대해서 보듬어 주기도 하지만 생채기를 주기도 한다. 알아감은 서로를 이해함이 되기도 하지만 이용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가끔 내 자신이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데 아내를 생채기 낼고 나서 아내가 아파할 때이다. 그래도 같이 있는 것을 행복해 할 줄 아는 우리이기에 앞으로 시간들을 기대하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목동 교보의 illy는 맛보다는 서점 안에 있는 그 분위기.. 2008 MK CAMP 캐릭터 "바울" 갑작스레 플랜카드 부탁을 받고, 작년 디자인을 거의 모방해서 진행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작년 디자인에 들어있는 캐릭터 "다윗"이었습니다. 작년 주제는 "예배자 다윗..." 그래서 바울 캐릭터를 즉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Paul' story" 선교를 주제로 한 이야기는 바울의 회심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그림으로 그 모든 걸 담을 수 없어서 고민했습니다. 그때 빌립보서 3장의 구절들이 떠올랐습니다. 바울하면 끝까지 경주하는 이미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성하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달려갈 길을 마친"(딤후 4:7)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로마를 향하여 달리는 바울의 이미지로 결정해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이.. 그리움이 쌓인 그곳 가끔 '낯선 한국'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한국인이며 한국에 살면서 내가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잠깐의 외국 생활 속에서 어느새 내 안에 남아공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가끔씩 향수병에 눈물을 흘리며 그곳의 친구들이 매우 그리워지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남아공에서의 3년은 선교사로서 살아간 시간보다 '나' 방준범을 찾았던 시간이어서일까?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면 그들은 나의 어색한 콩그리쉬 영어를 귀기울여주곤 했다. 그들에게 전하는 기쁜 소식 보다 그들의 내 영어를 들어주는 그 진지함이 오히려 나에게 기쁨이 되었던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한국에서 억눌렸던 자아를 처음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곳의 친구들은 언제나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었다... 내가 선교사라고 느낄 때... 내가 밟고 살았던 땅의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면서 두눈에 그리움의 눈물이 솟아 오를 때. 한국에서 어쩌다 만난 외국인이 내가 살았던 국적의 사람임을 알고 반가움이 솟아 오를때. 한국의 사람들이 웅성 거리는 거리가 낯설게 느껴질 때. 커피숍에 앉아 있을 때 외국인들이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한국을 다시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결혼도 했고, 어느정도 한국 생활에 적응되어가고 있다. 가끔 낯설게 느껴지던 버스타는 일도 익숙해지고,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가끔씩 만나는 남아공 소식이나, 중앙아시아의 소식을 보거나 듣게 될 때, 향수가 밀려온다. 내가 남아공에서 느꼈던 한국에 대한 향수처럼. 가슴이 시리고, 답.. 사사기 10장 우리의 고난, 인생의 신호등,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 고난은 종종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불신앙을 가르쳐주는 도구가 됩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그의 백성들에게 내리심으로 그들의 행위에 대한 판단을 내리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때, 우리를 돌아보는 묵상의 기회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습니다. 중앙집권도 아니었고, 족장사회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선한대로 따르면 되었습니다.그들의 선은 모세의 율법과 장막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편의주의가 찾아왔고, 또 율법보다는 생존에 우선을 두었습니다. 가나안인들의 습관도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은 한순간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체득된 결과인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대신 다른 것들도 채우기 시작한.. 사사기 9장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8장 후반부에서 에봇은 기드온과 그의 가족들이 죄를 짓게 만드는 덫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9장에서 등장한 아비멜렉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결국 모든 시작의 근원은 기드온의 에봇때문이라는 것인데, 기드온 일가의 몰락과 이스라엘의 타락이 기드온의 에봇이라는 것은 아마도 에봇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에봇은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상징하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이스라엘을 도우신 이유를 살펴볼 수 없다. 기드온이 그의 인생의 말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아내와 70명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약간의 정보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70인의 지도자를 둔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는지 모르겠다. 이스라엘의 기드온 가족에 대한.. 이전 1 ··· 15 16 17 18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