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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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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바스가 욥에게 말하다. 1. 욥기 4장 4. 12.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말했다. "거 참 말 많네, 친구. 일주일간 울어줬고, 위로했지만 네 넋두리는 더 못듣겠다. 네가 받는 건 심판이야. 하나님은 우리 죄를 속속들이 찾아 심판하신다구. 우리는 모두 심판의 대상이지. 그러니 너도 네 잘못이 있으니 이런 상황까지 온거야, 이친구야!" "그리고 절망은 직면해야 절망이라 느낀다구. 너 역시 어떤 위로나 권면을 했겠지? 그런 네가 지금의 너에게 한다는 말이 고작 고통의 절망에서 널 지웠으면 하는거니? 네 잘난 위로는 어디간게냐!" 하지만 엘리바스는 몰랐다. 하나님은 죄를 찾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욥기 5장. 4.13. "자, 욥! 이제 인정하게나. 너는 지금 너의 죄로 고통을 받고 있는게야. 너도 모를 ..
욥기2-3 고단한 인생 버겁고 고단한 인생... 열심히 살아내도 대면하는 절망에 직면한다. 슬퍼 우는게 아니라 탈출구없는 절망에 울 수 밖에 없다. 돌릴 곳없어 나에게 살을 돌린다. 저주스런 나... 욥 2-3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불편한 양쪽의 소리들을 묵상하며...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요즘처럼 자신의 이야기와 성향을 이야기하는 적을 그리 본적이 없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서 요즘만큼 치열하게 상대에 대한 강한 비난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아마도 선거의 열기 때문이리라... 이 양분된 분위기에 내 페친(99%가 기독인이다.)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만 듣기 거북한 강성의 글들(양진영에서)도 눈에 들어온다는 것.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훑어보면 어쩔 수 없는 친미성향의 신학과 일제시대 이후 민족주의적 기독교의 자주적 토착적 신학의 성향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덮어져서 친일-반공-친미 성향의 전통적 기독교와 반일-반외세-친민족의 성향 기독교로 크게 두가지로 분할되어 오늘까지 왔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단순히 신학적인 이분법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책 속에 희귀한 하나님의 말씀. 성벽을 세우고 성일에 모여 에스라의 말씀에 귀기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릴 때 모두 일어서서 경배하며 하나님께 예를 표했다. 그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청종했다. 깨닫게 된 것을 되새기며 불의에 속한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워했다. 말씀을 듣고자하는 열망이 가득차 성일동안 듣고 배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책 속에 희귀한 하나님의 말씀. 느헤미야 8장
예루살렘성 복구 Jerusalem. from. Wikipedia. 성전의 회복과 더불어 삶의 터전을 만드는 일을 했다. 외부의 적이 끊임없이 그 터전을 노렸다. 내부의 적은 회복을 늦추거나 방해했다. 그럼에도 성벽을 수축하고 삶의 터전을 복구하였다. 그것도 52일 만이다. 어떤 목표를 세우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지도자의 자질은 융통성이 아니라 원칙에 있다. 원칙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안전과 목표를 이루도록 지켜준다. 이로써 예배의 회복과 더불어 삶의 회복이 이뤄질 터전이 완성된다. 예배는 우리의 본질을 알도록 깨닫는 의식임과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삶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윤리와 태도로 개인과 공동체를 구성케 한다. 그렇게 하나님 나..
에스라-느헤미야의 하나님 관심은 오늘의 우리(자칭 교회)다! 스룹바벨을 통한 성전 건축 에스라의 율법을 바탕으로 한 성결 작업 마지막 느헤미야를 통한 예루살렘 성 복구 이 일련의 과정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유다는 자신 외의 종족들을 이방인이라 칭했고, 그들과의 구별된 태도들은 이후로 더 확고해진 듯 하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생각할 그 속에서도 선지자들은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부르짖는다. 몇 선지서들은 외지인들의 죄를 논하지만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그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의 배반과 모략, 탐욕, 위선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율법으로 무장한 바리새인들 조차 하나님 대신 자신들의 유전을 선택할정도로 굳어진 마음들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자신들의 의에 관심이 있었다. 이런 패턴은 오늘의 우리에게서 나..
성전의 완공(에스라 5-6장) 스룹바벨의 성전을 모델로 재건축한 헤롯 성전(from. 위키피아)내부갈등과 거주민과의 갈등으로 빚어진 성전건축의 중단은 다시 선자자의 예언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일을 지켜본 총독과 관리들은 초대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조서를 확인해 볼 것을 다리오왕에게 건의하고 그 결과 성전의 완공을 이루었다. 그리고 다시 성전의 예배가 회복되었다.여러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극적인 성전의 완공은 이스라엘의 예배, 공동체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함을 역대기에서 에스라까지 이르러 보여준다. 예배는 믿는자들의 의무이며, 그와 동시에 예배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거룩과 성결을 요구받는다. 이 문제는 통일왕국과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역사 속에서 왕들의 흥왕성쇠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기독교의 적극적인 선교 마인드는 예수의 명령과 ..
파란 나라에 정착한 초록 나라 아이. 인요한 출처. 조선 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22/2012032200115.html 선교사로 4대가 내리 한국 사랑으로 오늘까지 왔고, 결국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의 인생 이야기 "내고향은 전라고, 내영혼은 한국인"이란 책을 보며 그가 70-8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전라도에서 살아내며 체득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게 되었다. 그는 노란나라(미국) 사람이지만 파란나라(한국)에 와서 살았던 초록나라(TCK)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만나 한국인의 물리적 DNA는 없지만 정신적 DNA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파란색에 가까운 초록 사람이다. 물론 한국이 싫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을 떠나지 않았고, 심지어 광주사태로 인해 어려움을..